오쇼 라즈니쉬

---예전에 내가 썼던 일기...-------(내 말이 좋다는게 아니라 오쇼의 말을 기억하면서 하는 말이라)

오쇼 라즈니쉬의 책을 몇권 읽어보진 않았지만, 몇권 읽어보지 않아도 그가 참 말을 잘한다는 것을 곧 알게 된다. ^^
특히 실제 피부에 와닿는 진실을 칼같이 예리하게 집어낼때면, 왠지 허공에 붕 뜬 듯한 경전들의 말보다 더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한다. 아니면 아하..하는 감탄사나.
물론 지금은 살아있지 않은 고리타분한 인도남자라는 그 사고구조가 내 입맛에 딱 맞는것은 아니지만.. 일단 내가 받아들일 부분만 받아들이는 거니까.

머릿말이 길었지만, 오쇼의 책 한권에서 딱 와닿는 몇페이지가 있었다. 지금은 그 책이 없어서 (제목도 잊어버려서) 인용하기가 뭣하지만, 대충은 그런 내용이었다. 

인간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장신구를 치렁치렁 단다.. 돈이 많다는것을 자랑하기 위해, 아니면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기 위해, 그들을 치렁치렁 달고 다닌다. 
그렇게 육신의 치장에 정신이 없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열심히 책을 파는 이들..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고 은근히 우월의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해박함을 자랑하고 싶어 안달하지만 체면과 겸손의 가면을 유지코저 은근히 기회만 노리는 이들
대부분이 그렇지 않은가? 인간은 육체의 장신구나 영혼의 장신구를 달기위해 혈안이다.
그러나 육체의 장신구보다 영혼의 장신구 폐해가 더 심각하다. 왜냐면 육체가 썩어가는 것은 많은 사람이 보고 알며 경각심을 줄수가 있지만, 내면에서 썩어가는 영혼의 장신구는 돌이킬수 없이 그사람의 영혼을 깍아먹을 때까지 아무도 모를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육체의 장신구보다 더 떼기어려운 것이 영혼의 장신구이기에.

그들은 책을 읽고, 그 책 한권을 다 읽음으로써 저자의 정신세계를 모두 알고 있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찾아낸 장신구를 자랑하기에 혈안이 되어 잘난체하며, 상대를 비웃고, 그것을 비교하며 서로 뽐내기 바쁘다.

어쨌든 뭐, 이런 내용이었다. 오래 전에 읽어서 아마 내식으로 바꾸었을지 모르겠지만, 오쇼의 저 말이 어찌나 충격이던지.
말하자면 뻔하지만 나 역시 그러한 장신구를 모으고 있었기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말이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마음속에서 반문한다. 아니 저절로 자동으로 인식된다. 과연 내가 말하고 있는 이것이 장신구의 자랑인가? 자랑하고 싶어 발광하는 자아의 역겨운 모습인가

Posted by 갠달프 리오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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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성의 전당 2018.11.16 19: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오쇼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제가 또 댓글을 달았다면 죄송합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책 내용 중 일부를 아래 글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정보를 드리는 것뿐이니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https://blog.naver.com/ecenter2018